젓가락 필요 없어요, 숟가락도 필요 없어요,
양 손과 부지런한 손가락만 있다면 여기가 바로 천국-
해산물의 비릿한 감칠맛에 바다라는 짭짤한 조미료가 더해져
황홀한 싱싱함이 살아있는 매콤한 해산물 찜 레스토랑 보일링 크랩

미국의 해산물 레스토랑 중 가장 인기있는 곳 중 하나가 바로 보일링 크랩이다. 각 주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는 있지만 쉽게 말해 큰 비닐 봉투에 랍스터, 크랩, 조개, 홍합, 크로우 피쉬 등 갖가지 해산물을 넣어 매콤한 특제 소스로 버무린 일종의 찜 요리이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 솔직히 좀 실망한 느낌이다. 킹크랩이나 해산물이라고 하면 꽤 고급 요리에 속하고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 한국의 음식점에 비해 인테리어가 간단해도 너무 간단하다. 참 적은 돈을 들었을 것 같은 저렴한 테이블이 실망감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속단은 금물, 실용적인 미국인의 정서에 맞춰 겉으로 보여지는 인테리어에 비해 맛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쓸데 없는데 예산을 낭비할 필요 없이 오로지 맛과 신선함으로만 승부를 보겠다는 운영 철학까지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유명 해산물 레스토랑의 명성에 걸맞게 웨이팅은 필수이다. 관광객은 물론 로컬 현지인들이 더 많이 찾는 맛집이기 때문이다. 알록달록 낙서들로 가득한 웨이팅 룸에 앉아 있는 시간 조차 맛난 음식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기에 충분했다.

자리에 앉으면 일회용 비닐이 테이블마다 깔려 있다. 더러워질 걱정 없이 전투적으로 먹으라는 말이다. 그러면 담당 서버가 역시 비닐로 된 일회용 앞치마를 모든 고객에게 직접 채워준다. 보일링 크랩만의 손님을 위한 서비스라고 한다. 붉은 색의 크랩 그림이 앙증맞다. 더러워지지만 않았다면 집에 가져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메뉴는 각자 취향에 맞게 고르면 된다. 랍스터, 킹크랩, 크랩, 큰 새우, 작은 새우, 홍합, 조개, 오징어, 크로우 피쉬 등 해산물은 물론 통 옥수수, 감자 같은 야채도 함께 주문할 수 있다. 몇몇 해산물 가격은 싯가로 받는다. 우리나라 횟집에 가면 제철 생선을 싯가로 받는 구조와 비슷했다.

소스는 가장 유명한 케이준 스타일의 매운 소스, 갈릭 소스, 레몬페퍼 소스, 버터 소스 등을 선택할 수 있다. 주문 방법은 원재료인 해산물을 먼저 고르고 다음에 소스를 고른 후 매운 정도를 4단계 중 선택하면 된다. 우리 입맛에 3단계 정도만 해도 상당히 맵다. 고구마 튀김이나 오징어 튀김같은 에피타이저, 술과 음료, 디저트도 준비되어 있다.

입가에 소스가 묻어도 좋다. 손가락을 쪽쪽 빨며 해산물 까기에 정신이 없다. 테이블이 더러워지면 또 어떤가, 이렇게 중독성 강하고 맛난 해산물이 가득한데 말이다. 비닐 봉투에 맛깔스러운 소스가 쉐킷쉐킷 섞여져 나온 해물찜, 맵고 짜고 달달하고, 아무튼 해산물의 비릿한 감칠맛에 바다라는 짭짤한 조미료가 더해져 환상적인 조화를 이뤄 낸다. 비닐 장갑이 진가를 발휘한다. 역시 음식은 손으로 잡고 먹어야 제 맛이 난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으로 해산물 흡입에 열중한다. 신선하고 탱탱하고 감칠맛 가득한 비릿함이 기분 좋게 오랜동안 입 안에 남아있었다.